사천 가산리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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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사천 가산리 석장승(泗川 駕山里 石長栍)은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마을에 있는 돌장승입니다. 1974년 12월 24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산리 마을에는 조선시대 조창(漕倉)인 가산창이 있었는데, 이곳과 이웃한 7개 군현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을 모아 바닷길을 통해 서울로 보냈습니다. 이때 물건을 실은 배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원하며 돌장승을 세웠다고 합니다.
원래는 네 쌍의 돌장승이 있었지만, 한 쌍은 도난당했고, 1980년에 도난당한 장승을 대신하여 새로운 장승을 만들었지만 이는 민속자료로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세 쌍의 돌장승이 남아있습니다.
- 상신장(上神將): 마을 뒤쪽 높은 언덕 위에 남상(男像) 2기, 맞은편 밭가에 여상(女像) 2기가 있습니다.
- 하신장(下神將): 벅수골이라는 마을의 당산 나무 아래에 남상 2기가 있습니다.
남장승은 문인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관모를 쓰고 홀(笏)을 쥔 채 조복을 입고 있습니다. 얼굴은 갸름하고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코는 길쭉한 삼각형입니다. 여장승은 머리에 2개의 상투를 틀고 긴 장옷을 입고 홀을 들고 있습니다. 얼굴은 둥글고 눈은 돌출되어 있습니다.
이 장승들은 조창이 폐지된 후에도 마을을 수호하고 역병을 퇴치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장승제를 지내고, '가산오광대' 공연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에 장승제를 지냅니다.
장승은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지지만, 가산리 석장승은 돌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장승은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천 가산리 석장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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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사천 가산리 석장승 |
한자 표기 | 泗川 駕山里 石長栍 |
유형 | 경상남도의 민속문화재 |
지정 번호 | 3 |
지정일 | 1974년 12월 24일 |
주소 |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626-1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51m2 |
수량 | 8기 |
문화재청 ID | 24,0003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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